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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에게 서양 현대화가 중 아는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가장 많은 답변이 피카소다.

하지만 피카소는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화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이유는 그의 큐비즘(Cubism, 입체파) 회화 때문이다.

피카소가 큐비즘 회화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멀쩡한그림을 그렸다.

그랬던 그가 돌연 사람의 얼굴이 해체된 듯한 낯설고 이상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뭘까.

 

피카소의 화풍이 큐비즘 시기에 들어가기 직전, 3년 정도의 기간에 그는 아프리카 미술과 원시미술에 몰두했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그림이 그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다.

몇 년 후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큐비즘은 바로 이 그림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화면 오른쪽에 있는 두 여성의 얼굴이다.

두 명 중 서 있는 여성의 얼굴은 탈을 쓰고 있는 듯 보이고,

앉아 있는 여성은 탈을 쓴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피카소의 큐비즘 회화에서 자주 보게 될 얼굴을 하고 있다.

 

picaso.jpg

 

피카소가 이런 얼굴을 그리게 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당시 파리에서 전시되고 있던 19세기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이었다.

그는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미국 작가이자 미술품 수집가 거투르드 스타인에게 찾아가

자신이 아프리카의 예술작품들을 보고 비로소 회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당시 아프리카 조각을 보고 영감을 받은 건 피카소만이 아니다.

앙리 마티스, 폴 세잔과 폴 고갱 등 우리가 현대 화가로 이해하는 당시 파리파(에콜 드 파리)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미술을 통해 비로소 현대미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프리카 미술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당시 화가들은 자신이 유구한 유럽회화 역사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들은 예술의 목적은 역사적인 내용이나 종교화를 그리는 것도,

3차원 사물을 있는 그대로 2차원 화폭에 옮기는 데 있는 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을 빌리면) 화가는,

다른 그림에서 배운 묘사법을 사용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없다.

유럽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당시 유럽의 젊은 화가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마치 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완전히 다른 문법을 가진 아프리카 조각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원시미술’(이건 정확하지 않으며 서구의 편견이 들어간 표현이다)이라 불리던 비()서구 미술은 서구의 미술과 어떻게 다를까.

근대화 이후로 서구의 시각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비서구적인 시각표현을 단순히 추상적이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당시 피카소가 신기하게 들여다봤을 아프리카의 조각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만화 속 주인공의 얼굴보다 더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만화의 주인공들은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크지만

이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큰 눈을 가진 사람이 방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큰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일본만화의 캐릭터들은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큰 눈을 갖게 되었을까.

눈이 상대적으로 작은 동아시아인의 시각에서 눈이 큰 서양인을 묘사하다가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더 설득력 있는 의견은 감정표현에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감정표현은 주로 눈의 모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서양에서는 주로 입의 모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그래서 웃는 모습을 표현하는 이모티콘도 ^^:-)로 달라진다는) 말처럼,

일본만화는 등장인물의 미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눈을 사용하다 보니

크게 그려야 감정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만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미술관에서 이런 이미지를 봤다면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느꼈을 것임이 분명하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지역 원주민들이 만드는 토템폴(totem pole)은 서구인이 잘못 해석한 전형적인 예다.

큰 나무기둥에 우리나라 절 입구에서 본 듯한 우락부락한 캐릭터들이 아래서부터 위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을 본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따라 가장 위에 있는 인물이 가장 높은사람이고,

맨 아래에 있는 인물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지위가 낮을 사람을 가리켜

토템폴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low man on the totem pole)”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캐나다 원주민 문화에 따르면 가장 아래에 있는 인물이 가장 높은 지위에 있고 낮을수록 위에 배치된다.

 

반드시 비서구문화가 아니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원시미술 역시

서구와 현대의 시각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이해와 논리를 깨버리는 일이 많다.

15000년 전 선사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속 벽화에는 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미 잘 그려진 소위에 새로운 소를 아무렇게나 겹쳐서 그린 장면을 쉽게 보게 된다.

새로운 소를 그려넣을 장소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이미 완성된 그림을 무시하고 또 다른 그림을 그려넣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림은 작품이며 작품은 보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티베트의 승려들이 화려한 색의 모래로 몇 개월에서 심지어 몇 개년에 걸쳐 그리는 만다라를

완성되자마자 흩뜨려서 파괴하는 것을 보면 모든 문화에서 보고 즐기기 위해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알타미라 동굴 깊숙이 어두운 곳에 소를 마구 겹쳐서 그렸던 원시인들 역시

소를 그리는 행위가 중요했을 뿐 아름답게 배치해서 감상할 벽화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20세기 초 파리에 살던 젊은 유럽화가들에게 아프리카 조각은 몹시 낯설었을 것이고,

그들이 그 작품들의 문화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물을 보고, 세상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전혀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영감을 받았다.

그들의 창의력을 가두고 있던 병의 뚜껑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미술이라고 부를 때의 현대는 시간적, 시대적 구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대, 혹은 모더니즘은 바로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화가가 그리려는 것이 반드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서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을 보면서 전통의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는 계기를 찾은 것이다.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속 미술사>

 

기사원문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200601512417?OutUrl=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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